영가천도의 현대적 의미
불교에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은 영가천도에 대해서 의심의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지장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시름시름 아프면서 생시인지 꿈인지 알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지장보살은 병의 증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또 그 치유책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오래 병상에 누워 살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고 죽으려 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느니라. 꿈속에서는 악귀나 집안 친족과 험악한 길을 헤매며, 어떤 때는 도깨비에 홀리고 귀신과 같이 노니는 경우도 있느니라. 이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 몸이 점점 여위어서 잠을 자다가도 괴로워 소리치며 깨어나기도 하는 경우가 있느니라.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은 모두 다겁의 업장으로 인해 죄업의 경중을 정하지 못해서 수명을 버리기도 어렵고 병이 쾌차하기도 어려우니 이러한 연고는 보통 사람으로는 알 수가 없느니라. 이 증상을 치료하려면 마땅히 이 {지장경}을 불보살의 형상 앞에서 독송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불상을 모신 앞에 공양이나 등불을 올리거나 갖가지 부처님과 지장보살에게 공양을 했다는 것을 병자에게 일러주도록 하여라."
라고 하여 병자로 하여금 안심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늘 인터넷을 통해 모니터를 보고 계시는 여러분께서는 아마 이러한 병자와 같은 병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병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의 본심을 잃고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견(見)의 병증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상한 자기를 내세워 영원한 실체가 있는 냥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며 집착을 일으켜 수많은 업의 소용돌이에 헤매 돌고 도는 인생사를 살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거나, 잘났다 못났다 하는 병에 걸려 다른 사람을 질시하기도 하고 자기를 높이거나 비하시키는 등등의 일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현장에서는 갖가지 배신감을 가지고 마음 속에 응어리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이에 대해서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인간의 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모든 꿈의 내용을
인간의 일렉트라콤플렉스(Electra Compl ex)와 오디프스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규정하여 억압된 무의식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원초적으로 억압된 성적 충동의 감정을
이해하고 무의식을 의식의 세계로 발현시켜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하여 억제감정을 배설시키는 과정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있는 콤플렉스를 풀어 주어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다고 피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지장경}에서는 이것을
죽은 이와 산 사람의 죄책감에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즉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견(見)과 배신감 또는 적대감 등등의 마음
속의 응어리를 갖고 살아가는 죽은 자와 산 사람을 동시에 풀어 주는 것이 바로 영가천도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방법인 것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축적된 죄의식이나 자책감·원망·시기·질투·배신감·이루지 못한 소망의 원통함인 한(恨) 등을 풀어주지 못하면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산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친지나 권속들에게 축적되어 산 자에게 전이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영가들을 위해 {지장경}을 독송하거나 천도재를 지내 줌으로 인해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껴 억압된 감정이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도재를 올리면서 부처님과 지장보살에게
돌아가신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도움을 요청하고 또 망자와 인연이 있는 모든 영가를 초빙해서 공양드림으로써 천도를 받는 영가들은 깊은 의식
속에 숨어 있던 한(恨)의 감정을 풀게 되고 천도재를 드리는 자도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숨어 있던 죄의식이 녹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 다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선망부모와 일가친척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우리 스스로는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슬기로운 삶을 살아, 불행하게 악도에 윤회하여 자손들에게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억겁으로 이어진 무명업식(無明業識)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대자유를 찾아서 해탈하고자 하는 굴레의 강박관념으로부터도 초탈할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완전한 자유를 회복한 현성공안(現成公案)의 경지이고 지관타좌(只管打坐)하여 묵묵조조(默默照照)하는 본래부처의 현현(顯現)인 것입니다.
자료출처 : 지장신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