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병 수발 위해 입문… '마력'에 흠뻑 빠져
야생의 맛·영양 그대로 섭취 茶 만들어 마시는 게 최고
100여가지 새순 우려낸 '백초차' "지리산 통째 모시는 느낌" 극찬
학생들에게만 겨울방학이,농부에게만 겨울철 농한기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지리산자락 깊숙이 산야초를 캐러 다니는 이에게도 고운 잎들 떨어져내린 겨울은 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간이다. 새 움이 트는 내년 봄을 기약하며 소중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를 찾았다. 산야초를 뜯어 말리고 덖고 찌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대신 지난 시간 그가 만들어놓은 산야초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한담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때였다. 전문희(44)씨. 지천에 흐드러진 산야초의 소중함을 10여년의 세월 동안 세상에 알려온 그였다.
산야초 지킴이 전문희씨가 산야초차를 앞에 두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잡지 '선으로 가는 길'
# 어머니 병 간호 위해 산야초 찾아
전씨의 특이한 이력에는 어머니 병 간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20대 시절,패션 모델도 하고 인테리어 사업도 하던 어느날 홀어머니가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임파선 세포 상피암. 13시간의 수술과 6개월의 입원 생활에도 전신에 번진 암을 막을 수 없었단다.
열 일을 모두 제치고 고향인 전남 장흥에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온 전씨는 약초 책을 들고 암에 좋다는 약초를 캐러 '남도에 있는 큰 산은 거의 다 헤집고 다녔다'. 어릴 적 한약방을 하던 외삼촌 집에 약초를 뜯어다 주고 용돈을 받아쓰던 기억을 되살려 산에서 채취한 참빗살나무,등나무혹,꾸지뽕나무,삼백초,조릿대,느릅나무,인동초,하수오 등을 섞어 가마솥에 달여 드렸다고 한다.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던 어머니는 전씨의 정성 덕분인지 3년을 함께 더 사시다가 임종을 맞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전씨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남도로 내려왔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그리고 사는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맑게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자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의 일상은 산야초를 채집하고 텃밭을 가꾸며,책읽고 글쓰는 생활로 귀결됐다.
# 피를 맑게 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우리 산야초 차
산야초를 캐고 말리고 덖고 찌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그는 차츰 산야초차의 마력에 빨려들어갔다.
"우리가 소위 '채소'라며 먹는 야채들은 사람의 입맛에 맞게 부드럽고 아삭한 맛을 띤 것들로 한정되기 십상이다. 또 비료 뿌리고 농약 쳐 재배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산과 들에서 언제라도 채취할 수 있는 산야초는 산,흙,물,바람,햇빛이 내린 야생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편안한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칠고 껄끄럽게 느껴지지만 산야초를 먹으면 자연의 비타민과 미네랄을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다. 이들 산야초의 풍부한 영양성분을 일년 내내 섭취하려면 산야초 차를 만들어 마시면 된다고 전씨는 강조했다.
그가 만든 산야초 차 가운데 백미는 '백초차'다. 백초차는 말 그대로 100여 가지의 새순으로 만들어낸 차. 이른 봄부터 5월까지 지리산 800 고지 이상의 봉우리들에서 온갖 나무와 덩굴,야생초들의 새순을 따 녹차처럼 덖어 만든다. 가시오갈피나무,산복숭아나무,산뽕나무,소나무,두충나무의 어린 잎에다 다래와 으름덩굴,칡,찔레,인동초,복분자,하수오,두릅 등의 새순이 백초차에 모두 모였다.
여러해 동안 시행착오와 시험을 거쳐 개발했다는 이 백초차를 우려 마시면서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는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을 통째로 내 몸에 모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백초차뿐이 아니다. 매화차,칡꼬차,국화차 등 꽃으로 만든 차와 쑥차,솔잎차,민들레차,인동초차,뽕잎차,구절초차,구기자차 등 제조법이 조금씩 다를 뿐 차로 만들어 마시지 못하는 야생초가 없을 정도이다.
조금씩 주변에 나눠주기 시작한 야생초차는 서서히 지인들 사이에 이름이 나 '건강을 위한 산야초차 모임'도 생겨났고 10여년 산야초차 만들기와 보급,강연 등에 힘을 써온 덕분에 이제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우리 약초,산야초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다.
# 산에 가고 차 마시며 마음공부 해요
전씨는 "옛사람들은 흔히 가정에서 약초차를 만들어 먹었다"며 "커피,홍차,중국차 등 수입차에만 길들여진 입맛을 벗어나 생명수인 물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산야초 차를 마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몸의 건강 뿐이 아니다. 산야초를 캐려면 봄,여름과 가을,새순이 올라올 때와 꽃이 필 때,장마질 때,겨울을 대비할 때,제각각 자연의 시간과 흐름을 잘 좇아야 한다. 자연을 살피고 산을 오르는 것도,산야초차를 만드는 것도 전씨에게는 모두 수행과 다름이 없단다.
그는 "오래 산을 오르다 보니 서두르지 않고 온몸으로 산을 느끼며 명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게 된다"고 했다.
오랜기간 피아골에서 산야초차를 만들어오던 그는 앞서 올 2월께 중산리계곡 어디께로 자리를 옮겼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번잡함 때문이다. 지난 10여년의 노력 끝에 산야초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어느정도 높아진 만큼 자신은 조용히 산야초를 만들고 산을 오르며 마음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다만 한가지는 꼭 당부한다. 산이 주는 선물을 얻을 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산도,나무도,풀도 다치지 않게 배려해 달라는 얘기다. 간혹 건강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뿌리째 산야초를 거두어 가 씨를 말리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몸을 상하게 하고 자연도 상하게 하는 일일 뿐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첫째라는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았다. 배재정기자 doublej@busanilbo.com
출처 부산일보
'그룹명 > 생활속의 종합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년퇴직 후 (0) | 2007.12.16 |
---|---|
감기는 (0) | 2007.12.16 |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까이 (0) | 2007.12.08 |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좋은 글 (0) | 2007.11.24 |
도요타의 7가지 습관 (0) | 2007.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