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것은 어려움일수도 행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자각하고 있는 마음의 힘만으로
모든 현실을 좌우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들을 낳고싶다고 해서 아들이 낳아지는 게 아니다.
갑자기 일어난 행운이나 불행한 사건을 의도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비록 믿고싶지는 않겠지만 이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운명이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논의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의도하지 않은 일도 분명히 일어난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본다면,
의도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성적이 올랐다.
처음엔 외면하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했더니 사랑이 이루어졌다.
굳이 더 많은 예를 들어 볼 필요도 없으리라.
운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운명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하니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있는데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운명을 믿는 이들이 운명을 믿는 이유는 노력해도 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어나는 일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흑백론적인 사고의 결과다.
운명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0이냐 1이냐, 흑이냐 백이냐를 놓고 싸우는 이분법의 결과다.
운명의 존재여부는 회색인데,
그것을 흑으로 보는 이들은 흑이라 우기고
백이라 보는 이들은 백이라 우기며 싸우는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옛부터 내려오는 말에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운이 칠할이요 기가 삼할이라는 뜻이다.
운명적인 부분이 70 퍼센트이고 노력하면 바뀌는 부분이 30퍼센트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먼 과거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과거에는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인터넷과 휴대전화 같은 통신수단이 없었고,
정보의 흐름과 인과론적인 면에서도 느리고 고정된 사회였다.
예컨대 죄를 짓는다 해도 그것이 지금과 같이 짧은 시간 내에 드러나기가 어려웠을테고,
뭔가 뜻을 세운다 해도 온갖 제약들에 의해 이루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록 여전히 과거와 같이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이기는 하지만 기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게 된 것이다.
원한다면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과거의 시대상이 분자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고체와 같은 시대였다면
현재는 기체와 같이 활발하게 운동하고 폭발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쯤되면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운오기오(運五氣五)라는 말로 바꾸어 볼만하지 않을까?
또한 이렇게 빠른 시대적 변화를 지나 조만간에 운삼기칠(運三氣七)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운과 기, 정해진 흐름과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의 비율이 어찌 배분되는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확실한 것 두 가지는 운과 기의 비율이
자신의 마음먹기에 상당 부분 달려 있게 되리란 사실과 더불어
여전히 운의 정해진 흐름은 인생에 있어서 실재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운명을 더 크게 믿으면 믿을수록 운에 의존되는 비율이 높아지리라.
왜냐하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더 많은 일들이 운명에 의해 마땅히 일어나게 되는 일로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력에 의한 운명의 변화를 더 크게 믿을수록 운명이 작용하는 비율은 낮아지리라.
더 많은 일들이 변화 가능한 일들로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언젠가 뿌려놓은 인과의 씨앗은 여전히 조건이 만족되면 열매를 맺게 마련인 법.
피하고자 해서 피해갈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비록 당장 기억에는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 뿌린 씨앗은 스스로 거둘 수 밖에 없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면 그것을 받아들여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순순히 수용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체념하라.
삶이 극도로 혼란스러운가?
인생이 어찌 돌아가는지 어지럽기만 한가?
그렇다면 운명을 믿어라!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라!
그렇지 않다면 운명을 믿지 마라!
최선을 다해 의도한 것을 이루어라!
이 두 가지 상반된 지혜를 함께 하라.
이것은 논리적으로 보기에 모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삶과 우주는 논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이다.
이런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넉넉한 의식으로 그것을 받아 들여야만 한다.
운명을 믿어라!
그리고 운명을 보는 법을 배워 지혜롭게 처신하라.
필요하다면 운명을 믿지 마라!
삶에 지혜롭게 대처해 갈 수 있도록 자신을 개발하고,
마음의 기술을 배우고,
삶의 기술을 배워라!
이런 지혜는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전용석, 아주 특별한 성공의 지혜 中에서 -
그것은 어려움일수도 행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자각하고 있는 마음의 힘만으로
모든 현실을 좌우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들을 낳고싶다고 해서 아들이 낳아지는 게 아니다.
갑자기 일어난 행운이나 불행한 사건을 의도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비록 믿고싶지는 않겠지만 이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운명이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논의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의도하지 않은 일도 분명히 일어난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본다면,
의도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성적이 올랐다.
처음엔 외면하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했더니 사랑이 이루어졌다.
굳이 더 많은 예를 들어 볼 필요도 없으리라.
운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운명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하니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있는데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운명을 믿는 이들이 운명을 믿는 이유는 노력해도 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어나는 일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흑백론적인 사고의 결과다.
운명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0이냐 1이냐, 흑이냐 백이냐를 놓고 싸우는 이분법의 결과다.
운명의 존재여부는 회색인데,
그것을 흑으로 보는 이들은 흑이라 우기고
백이라 보는 이들은 백이라 우기며 싸우는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옛부터 내려오는 말에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운이 칠할이요 기가 삼할이라는 뜻이다.
운명적인 부분이 70 퍼센트이고 노력하면 바뀌는 부분이 30퍼센트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먼 과거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과거에는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인터넷과 휴대전화 같은 통신수단이 없었고,
정보의 흐름과 인과론적인 면에서도 느리고 고정된 사회였다.
예컨대 죄를 짓는다 해도 그것이 지금과 같이 짧은 시간 내에 드러나기가 어려웠을테고,
뭔가 뜻을 세운다 해도 온갖 제약들에 의해 이루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록 여전히 과거와 같이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이기는 하지만 기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게 된 것이다.
원한다면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과거의 시대상이 분자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고체와 같은 시대였다면
현재는 기체와 같이 활발하게 운동하고 폭발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쯤되면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운오기오(運五氣五)라는 말로 바꾸어 볼만하지 않을까?
또한 이렇게 빠른 시대적 변화를 지나 조만간에 운삼기칠(運三氣七)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운과 기, 정해진 흐름과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의 비율이 어찌 배분되는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확실한 것 두 가지는 운과 기의 비율이
자신의 마음먹기에 상당 부분 달려 있게 되리란 사실과 더불어
여전히 운의 정해진 흐름은 인생에 있어서 실재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운명을 더 크게 믿으면 믿을수록 운에 의존되는 비율이 높아지리라.
왜냐하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더 많은 일들이 운명에 의해 마땅히 일어나게 되는 일로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력에 의한 운명의 변화를 더 크게 믿을수록 운명이 작용하는 비율은 낮아지리라.
더 많은 일들이 변화 가능한 일들로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언젠가 뿌려놓은 인과의 씨앗은 여전히 조건이 만족되면 열매를 맺게 마련인 법.
피하고자 해서 피해갈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비록 당장 기억에는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 뿌린 씨앗은 스스로 거둘 수 밖에 없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면 그것을 받아들여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순순히 수용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체념하라.
삶이 극도로 혼란스러운가?
인생이 어찌 돌아가는지 어지럽기만 한가?
그렇다면 운명을 믿어라!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라!
그렇지 않다면 운명을 믿지 마라!
최선을 다해 의도한 것을 이루어라!
이 두 가지 상반된 지혜를 함께 하라.
이것은 논리적으로 보기에 모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삶과 우주는 논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이다.
이런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넉넉한 의식으로 그것을 받아 들여야만 한다.
운명을 믿어라!
그리고 운명을 보는 법을 배워 지혜롭게 처신하라.
필요하다면 운명을 믿지 마라!
삶에 지혜롭게 대처해 갈 수 있도록 자신을 개발하고,
마음의 기술을 배우고,
삶의 기술을 배워라!
이런 지혜는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전용석, 아주 특별한 성공의 지혜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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