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언제 태어났나?
기원전 624년 추정…지역 따라 연도 날짜 달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해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 불기(佛紀)다.
올해가 불기 2551년 즉, 부처님이 입적하신지 2551년이 지났고, 부처님이 80세에 입멸했다는 설을 토대로 추산해보면
기원전 624년에 태어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남방.북방불교마다 내려오는 설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 역시 추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오신날로 정한 음력 4월8일은 진짜 부처님 생일이 맞을까. 안타깝지만 4월8일도 역시
하나의 ‘설’이다. 남방불교국가인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에서는 인도력으로 2월인 바이사카월 보름에 태어났다고
믿는데 인도력 2월은 지금의 4~5월에 해당한다. 또 〈불본행집경〉 7권, 〈과거현재인과경〉 1권에서는 2월8일을
주장하고, 〈서역기〉 6권 등에서는 3월8일 또는 3월15일을 부처님이 태어난 날로 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은 음력 4월8일을, 일본은 양력 4월8일을 부처님오신날로 여긴다.
이는 〈태자서응본기경〉 상권, 〈불소행찬〉 1권 등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오신날이 서로 다른 이유는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1월에 대한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② 어느 나라 사람인가?
석가족 지배하던 히말라야 남쪽 카필라바스투
우리나라 사찰에 모셔진 불상을 보면 한국사람 같고, 중국 사찰에 봉안된 불상을 보면 중국사람 같은 부처님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일까.
부처님이 태어난 곳은 북인도의 히말라야산 남쪽에 위치한 카필라바스투였다. 이곳은 오늘날 네팔의 타라이 지방에
속하는 지역이다. 그 무렵 인도 북부에는 석가족 외에도 리차비, 말라 같은 공화국 형태의 국가와 마가다, 코살라, 바차,
아반티 같은 왕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카필라바스투는 석가족이 지배하던 곳이다.
석가족의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카필라바스투의 왕인 아버지 슛도다나(淨飯王)와 마야 왕비의 아들로 태어난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바라문으로부터
“가정생활을 하면 전륜성왕이, 출가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바라문의 예언대로 그는 왕자의 자리
를 벗어던지고 출가했다. 한 나라의 왕이란 자리도 부처님을 세간에 주저앉히지 못한 것이다.
③ 룸비니 동산은 어떤 곳?
마야부인이 無憂樹 잡고 부처님 낳은 ‘성지’
당시 인도에는 친정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일반화돼 있었다. 출산을 앞둔 마야부인 역시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인
데바다하로 향했다. 카필라 성을 나선 그녀는 성 동쪽에서 50리 쯤 떨어져 있던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다. 부처님 생애를
노래한 〈붓다차리타〉에서는 룸비니 동산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저 룸비니의 훌륭한 동산 흐르는 샘물 있고 꽃과
열매 우거지고 한가하고 고요하여 선사(禪思)하기에 알맞기에 거기 나가 놀기를 왕에게 청하였네.”
고요한 숲에서 잠시 쉬려고 동산에 들어선 왕비는 무우수(無憂樹, 근심이 없는 나무)가지를 붙들고 서서 오른쪽 옆구리로
아이를 낳았다. 그 때 범천과 사천왕이 내려와 부처님을 받아 인간에게 건넸다.
〈붓다차리타〉에서는 이 순간을 “때는 사월도 팔일 맑고 화한 기운 고르고 알맞은데 그는 재계하고 깨끗한 덕 닦았기에
보살은 오른쪽 옆구리로 나셨도다 큰 자비는 온 세상을 건지려 하였기에 그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았나니”라고 노래하고
있다.
한편 기원전 3세기 무렵, 아소카왕은 부처님 탄생으로 성지가 된 룸비니 마을의 세금을 면제한다는 글을 석주를 남겨
놓기도 했다.
④ 왜 옆구리로 태어났을까?
석가족 속한 무사계급 크샤트리아 ‘출생처’ 상징
〈인과경〉에서는 부처님 탄생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동산 안에는 무우수(無憂樹)라는 큰 나무가 있었다. 비(妃)가
오른손을 들어 그것을 움켜쥐려고 할 때 보살은 그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왔다.” 〈대장엄경〉이나 〈본행집경〉에서도
우협출생(右脇出生)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남방에 전해지는 부처님 전기에서는 특별히 여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실 옆구리 탄생은 당시 인도사회 신분제도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성직자인 바라문과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 평민계급인 바이샤와 천민인 수드라 등 4개의 계급으로 신분을
나뉘었다. 그리고 계급에 따라 태어나는 곳을 구분했는데, 수드라는 인류의 원 조상격의 인물인 푸루샤의 발바닥에서,
바이샤는 다리에서,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브라만은 입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다.
부처님 역시 무사계급 크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인 마야 왕비의 옆구리에 태어났다고 묘사된다.
그것은 출가하기 전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무사가문인 석가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제왕절개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왕절개를 해서 오른쪽 옆구리에 태어난 것이고 마야부인은 절개로 인한
출혈이 멎지 않아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⑤ 태어나자마자 외친 말?
“천상천하 유아독존” 참뜻 ‘스스로 깨달음’ 자기선언
부처님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발자국씩 걸어갔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을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
부처님 탄생게로 잘 알려진 이 말은 ‘천상천하에서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
케 하리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들에게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기억되는 이 외침은 요즘 ‘내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것을 드러낼 때 자주 쓰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처님의 본심을 외면한 것이다. 부처님은 탄생게에 모든 중생을 해탈의 길로 안내하겠다는 서원을 담았다.
⑥ 원래 이름은?
출가전엔 고타마 싯다르타 ‘모든일 뜻대로 이루어진다’
부처님을 불타(佛陀) 혹은 붓다(Buddha)라 부르는 것은 그가 깨달은 사람(覺者)이기 때문이다.
사실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자이나교에서도 붓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부처님의 출가 전의 성은 고타마(Gautama)이고,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 悉達多)다.
싯다르타라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보요경〉과 〈광대장엄경〉 3권에는 “보살이 환성할 때 그들은 각기 문을 열고 ‘원컨대 천중천(天中天)이여
저희 궁전을 복되게 해주소서’하고 왕자를 찬탄해 은덕을 입었다.
이 인연으로 하여 살바싯다르타 즉 일체성리(一切成利)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⑦ 가족관계는?
이모 마하프라자파티는 ‘최초의 비구니스님’
부처님의 아버지는 석가족의 왕인 슛도다나이며 어머니는 마야 왕비다. 그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읜다.
일찍 어머니를 잃은 왕자의 양육을 걱정하던 왕은 마야부인의 동생이자 싯다르타의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에게 아들을
맡긴다. 〈대장엄경〉 3권에 따르면 “슛도다나 왕이 누구에게 싯다르타 왕자를 맡길 것인지 걱정하자 주위의 사람들이
이모일 뿐 아니라 자애가 깊은 마하프라자파티를 추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사상 최초의 비구니스님이기도 한
마하프라자파티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던 싯다르타 왕자는 이후 이복동생을 얻는데 그가 바로 난다(難陀)다.
또 출가하기 전 싯다르타 왕자는 야소다라와 일가를 이룬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라훌라이다. 부처님 10대 제자 중
한 명이기도 한 라훌라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아도 계율을 잘 지켜 밀행제일이라고 불렸다. 그가 어린 나이에 출가하는
바람에, 이때부터 교단에 사미제도가 도입됐다.
오랫동안 부처님을 시봉한 다문제일의 아난다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다.
또 부처님을 세 번이나 죽이려 했던 데바닷타와 아나율 등도 부처님과 사촌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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